[뉴스피처] 도장 찍고도 왜…살던 집 교대로 드나드는 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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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우리 이혼했어요',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 '신발 벗고 돌싱포맨', '돌싱글즈'.

최근 종영했거나 현재 방송 중인 TV 예능 프로그램 제목들입니다.

방송가에선 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하고 이른바 '돌싱'이 된 일반 대중과 연예인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요.

특히 싱글맘들의 육아 현장을 담은 '내가 키운다'에선 최근 아이와 함께 전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과일 농장을 찾는 배우의 모습이 화제가 됐죠.

통계청의 '2020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는 10만7천 건으로 2019년 대비 4천 건(3.9%)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부가 이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1998년 이래 꾸준히 매년 10만 쌍 이상이 이혼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혼 부부의 삶에 대한 논의는 점점 자연스러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죠.

'내가 키운다'처럼 이혼 후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연예인들이 자녀와의 일상을 공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기면서 이혼 부부의 삶만큼이나 이혼 가정의 육아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요.

최근 영국 BBC에 따르면 요즘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선 '버드네스팅'(bird nesting)이라는 이혼 후 양육 방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습니다.

'네스팅'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는 버드네스팅은 이혼한 부부가 이혼 전 생활하던 집에 아이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차례로 이 집에 들어가 생활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 중 한쪽이 약속된 양육 시간 동안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면, 나머지 한 명은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식이죠.

버드네스팅이란 이름은 새들이 둥지에 새끼들을 안전하게 남겨두고 날아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새끼를 키워내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BBC는 버드네스팅이 아직 세계적으로 확산한 개념은 아니지만 서구 국가의 중산층 가정에서 이 같은 이혼 후 양육방식이 확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버드네스팅을 하는 이혼 부모는 미국과 호주, 네덜란드 등지에서 증가세를 보였으며 최근 영국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이혼 부모의 약 11%가 버드네스팅을 시도했죠.

이혼한 부모 양쪽이 공평하게 아이 양육을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스웨덴에선 1970년대부터 이미 일부 이혼 부모들이 번갈아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키워냈다는데요.

'버드네스팅 부모 가이드북'을 쓴 미국의 앤 부쇼 박사는 이 같은 추세 이면에는 이혼 후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양육하는 유명인들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끼친 영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할리우드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가수 크리스 마틴과 이혼 후에도 한참 동안 그들이 함께 살던 집에 수시로 드나들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역시 2019년 위자료가 40조 원가량에 달하는 '세기의 이혼'을 했지만, 이후 전처와 한집에 드나들며 버드네스팅 방식으로 아이들을 양육했다는데요.

또 미국에서도 이혼 가정 모습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송돼 시청자들이 버드네스팅 모습을 접한 것도 이 방식이 과거보다 널리 알려지는 데 일조했죠.

영국 한 변호사에 따르면 버드네스팅은 이혼 중 부동산 처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정 비용이나 세금 등의 부담을 덜고 '경제적인 이혼'을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버드네스팅이 요즘 들어 주목받는 이유는 아동의 정신건강에 대한 사람들 관심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버드네스팅이 정말 이혼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경험자와 전문가들 사이 의견이 갈립니다.

부쇼 박사는 버드네스팅이 이혼 가정 아이들이 기존 일상을 유지하고 가정에 일어난 변화에 점진적으로 적응하게 만들어 그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이혼 후 8개월간 버드네스팅을 했던 스웨덴의 한 남성은 "아이들이 원래 살던 집에 살면서 학교와 친구들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죠.

하지만 버드네스팅이 '반쪽짜리 가정'을 만들고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웨덴 아동심리학자 말린 베리스트룀은 "아이들을 현실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버드네스팅이 정신 건강에는 오히려 해롭다"고 지적하는데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버드네스팅을 경험한 노르웨이의 한 여성은 "내가 엄마 집에 있는 건지 아빠 집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며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했죠.

버드네스팅이 아이들을 함께 양육하는 이혼 부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부쇼 박사는 버드네스팅이 이혼 부부에게 '숨 쉴 틈'을 줘 이들이 자녀 양육에 대해 장기적으로 계획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주장하지만, 베리스트룀은 버드네스팅이 이혼 부부가 이별을 극복하는 능력을 지연시켜 이들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데요.

이혼 이후 부부는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고 새 삶에 대처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느끼는데 버드네스팅은 이렇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일을 막는다는 겁니다.

결국 버드네스팅이 몇몇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이혼과 양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막아줄 '만병통치약'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인데요.

그런데도 이혼 후 공동 양육이 과거보다 긍정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버드네스팅이 앞으로 좀 더 흔한 이혼 가정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혼과 양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시대. 서구에서 점차 확산하는 버드네스팅이 이혼 부부와 자녀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이은정 기자 김지원 작가 김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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